이혜안

『미로에서 길을 찾지 않는 법』 메세지 한 줄이 오해가 될 때

보르헤스의 단편 열두 편을 밑그림으로 삼아 답이 너무 많은 시대의 일상을 읽는 에세이

『미로에서 길을 찾지 않는 법』 메세지 한 줄이 오해가 될 때

결혼 이듬해 겨울, 회의가 길어질 것 같던 저녁에 남편이 아내에게 카카오톡을 한 줄 보내요.

「오늘 저녁 알아서 먹어.」

보낸 사람 머릿속에서 이 문장은 다정했어요. 기다리지 말고 먼저 먹으라는 배려였으니까요. 받은 사람은 차가운 통보로 읽었고, 혼자 라면을 끓여 먹다 눈물을 보였어요. 글자 하나 다르지 않은 문장이 두 사람에게 전혀 다른 문장이 된 거예요.

『미로에서 길을 찾지 않는 법』은 이런 장면 열두 개로 이루어진 책이에요. 아르헨티나 작가 보르헤스(1899~1986)가 소설집 「픽션들」(1944)에 남긴 단편 열두 편을 한 장에 하나씩 밑그림으로 삼고, 그 상상을 오늘의 검색창과 메신저와 옛 일기장 앞으로 옮겨 왔어요.

책이 말하는 것은 한 문장이에요.

답이 없어서 괴로운 것이 아니라, 답이 있어야 한다고 믿어서 괴롭다는 것.

『미로에서 길을 찾지 않는 법』 앞표지

「원본은 없다. 번역만 있다.」

카카오톡 대화 장면이 포함된 3장은 보르헤스의 단편 하나를 빌려 왔어요. 20세기 프랑스 작가가 17세기 스페인 소설을, 베끼지 않고 자기 힘으로, 글자 하나 다르지 않게 다시 쓰겠다고 나서는 이야기예요.

성공한다면 그 글은 원작과 같은 작품일까요. 책의 대답은 아니라는 쪽이에요. 같은 단어도 쓰인 시대와 읽는 사람이 달라지면 다른 뜻을 품으니까요.

그래서 3장은 오해를 소통의 실패로 보지 않아요.

"이 방향으로 한번 검토해봐"를 한 사람은 지시가, 한 사람은 제안으로, 한 사람에게는 떠넘기기가 되는 회의실 장면이 있어요. 일주일 뒤 팀장은 아무것도 하지 않은 사람에게 화를 내고, 그 사람은 억울해해요. 둘 다 자기가 들은 것이 그 메세지의 원본이라고 믿어요.

책은 내가 한 말보다 상대가 들은 말이 중요해지는 순간을 이렇게 보여 줘요.

『미로에서 길을 찾지 않는 법』 펼친 내지

네 개의 부는 무엇을 묻나요?

열두 장은 세 장씩 이루어진 네 부로 묶여 있어요. 각 부마다 묻는 핵심 질문이 달라요.

제1부 세계라는 도서관은 정보를 물어요. 모든 책이 꽂힌 무한한 도서관에서는 맞는 안내서와 틀린 안내서를 가려낼 방법이 없어요.

「모든 것이 있기 때문에, 아무것도 확실하지 않다.」

새벽 두 시에 숫자 하나를 확인하려다 두 시간 뒤 경제 유튜버의 목소리를 듣고 있는 밤이 그 도서관이에요.

제2부 갈래 길 위의 선택은 고르는 일을 물어요. 스물여덟에 합격 통보 두 장을 받은 화자는 잠을 이루지 못해요. 무엇을 얻느냐보다 무엇을 잃느냐가 무거웠기 때문이에요.

「선택은 곧 애도다.」

고르지 않은 삶을 조용히 보내 주는 일까지가 선택이라는 뜻이에요.

『미로에서 길을 찾지 않는 법』을 읽는 모습

제3부 기억이라는 감옥은 잊는 일을 물어요. 페이스북 알고리즘이 나에게 7년 전 사진을 불쑥 꺼내 보인 날, 화자는 디지털이 나의 과거를 잊지 않는다는 사실과 마주해요. 책은 망각을 뇌의 결함이 아니라 중요한 기능이라는 것을 알려줘요.

「망각은 지우개가 아니다. 필터에 가깝다.」

제4부 미로를 사랑하는 법은 받아들이는 일을 물어요. 70쪽에서 작성하다 멈춘 소설 파일, 세 문장으로 줄여야 했던 두꺼운 보고서, 오래 들여다보면 낯설어지는 거울 속 얼굴이 차례로 나와요.

「완성은 닫힘이다. 미완성은 열림이다.」

미로같은 나의 삶을 사랑하는 것은 마침표와 말줄임표의 차이라고,

『미로에서 길을 찾지 않는 법』 전자책 화면

이 책을 펴면 좋은 밤이 있어요

이 책의 독자를 상상해 볼 때 보이는 모습은 꽤 구체적이에요.

퇴사를 마음먹고 석 달째 조사만 하는 사람.

승진 발표가 난 날 퇴근길에서 내가 잘못한 지난 3년을 되감는 사람.

아이에게 "수학은?" 하고 묻게 될까 봐 겁이 나는 사람.

전부 책 속 인물들이 겪는 일이에요.

이 책은 그 사람들에게 방법을 주지 않아요. 프롤로그부터 출구를 알려 주지 않는다고 못 박고, 에필로그에서도 그 말은 변하지 않아요.

대신 같은 그 자리를 바라보는 시선을 다르게 만들어요.

그래서 다 읽어도 상황은 그대로예요. 당장 나의 문제를 해결할 방법이 필요한 밤에는 아쉬운 책일 수 있어요.

해법서가 넘치는 서가에서 이 책이 서 있는 자리가 거기예요.

『미로에서 길을 찾지 않는 법』이 놓인 창가

이런분께 권해요.

이런 분께 권해요.

  • 무언가를 알아볼수록 결정이 어려워지는 분
  • 보르헤스가 궁금했지만 소설부터 읽기는 부담스러웠던 분
  • 짧은 에세이를 하루 한 편씩 읽고 싶은 분

이런 분께는 맞지 않을 수도 있어요.

  • 구체적인 계획과, 체크리스트 그리고 실행 단계를 원하는 분
  • 보르헤스 작품의 본격 해설을 기대하는 분
  • 본문은 작품명을 밝히지 않고, 책 끝 주석 스물두 개 가운데 일부가 어느 단편을 빌렸는지 알려 줄 뿐이예요.

『미로에서 길을 찾지 않는 법』 태블릿 전자책

오디오북 『미로에서 길을 찾지 않는 법』

오디오북은 AI 성우 박지환의 따뜻하고 멋진 목소리로 2시간 29분 동안 낭독됩니다.

『미로에서 길을 찾지 않는 법』을 검색하시거나 퍼블리셔 여름 홈페이지에서 들으실 수 있어요.

『미로에서 길을 찾지 않는 법』과 찻잔

자주 묻는 질문

보르헤스를 읽지 않았어도 괜찮을까요?

보르헤스를 한 편도 읽지 않았어도 괜찮아요, 본문은 단편의 설정만 빌려 와 현실에 맞게 풀어서 들려줄 뿐이예요.

자기계발서인가요, 문학 에세이인가요?

서가에 꽂는다면 문학 에세이 쪽이에요, 심리학 개념과 실험에 대한 내용이 있지만 그 결론을 정확히 확정짓지는 않아요.

실천 항목을 찾는 분보다 생각할 여유를 찾는 분께 맞아요.

『미로에서 길을 찾지 않는 법』 내지 가까이

「당신의 미로에서, 좋은 모퉁이를 만나기를.」

www.yeoreum.co.kr 에서 『미로에서 길을 찾지 않는 법』를 만나보세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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