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배수비오 챌린지』 현대 최첨단 기술로 풀어내는 고대 파피루스
숯이 된 헤르쿨라네움 서고 앞에 선 네 개의 손. 파데르니의 칼, 피아조의 명주실, 실스의 엑스선, 그리고 모두에게 연 데이터. 『배수비오 챌린지』의 뼈대와 한계를 정리했어요.

『배수비오 챌린지』 현대 최첨단 기술로 풀어내는 고대 파피루스
두루마리 1,800개 가까이.
1752년 10월, 나폴리 근교의 갱도에서 처음 나온 검은 원통들.
그 가운데 첫 두루마리 하나를 끝까지 펴는 데 걸린 시간, 4년.
반세기 동안 무사히 열린 두루마리, 18통.
퍼블리셔 여름이 펴낸 『배수비오 챌린지』는 이를 현대에 어떻게 풀어냈는지에 대한 기록이에요.
서기 79년, 베수비오 화산의 화쇄류가 덮친 헤르쿨라네움의 한 저택.
그 서고는 고전 고대 세계에서 통째로 살아남은 유일한 도서관이었어요.
문제는 단 하나.
펼치면 부서진다는 것.

첫 번째 손, 파데르니의 칼
포르티치 왕립 박물관의 초대 관장 카밀로 파데르니.
로마에서 고대 유물을 그리던 화가 출신이었어요.
그가 고안한 방법은 화가다운 방법.
두루마리를 세로로 갈라 벌리고, 드러난 글자를 옮겨 그리고, 다 그린 층은 긁어내 그 아래 층으로.
「읽은 만큼 책이 사라졌다.」
이 방식을 거친 두루마리가 수백 개, 그 수백 개는 모두 부서졌어요.
책은 그 시대를 단죄만 하지는 않아요.
두루마리는 많았고, 왕은 읽을 수 있는 글자를 원했으니까.
다만 이 서고의 책 대부분은 세상 어디에도 사본이 없는 유일본.
여기서 부서지면 그대로 지워지는 책.
두 번째 손, 피아조의 명주실
바티칸 교황청 도서관에서 내려온 안토니오 피아조 신부.
그가 만든 것은 나무와 유리와 놋쇠로 짠 기계였어요.
벌어지기 시작한 가장자리에 명주실을 물리고, 축을 아주 조금씩 돌립니다.
펴진 면 뒤에는 동물의 창자막을 얇게 편 박막을 발라 부스러지는 종이를 받쳤고요.
「힘이 아니라 시간을 쓰는 기계였다.」
하루에 나아간 거리는 몇 밀리미터, 손톱이 자라는 속도.
그렇게 처음 펼쳐진 두루마리는 필로데모스의 음악론.
잃어버린 소포클레스를 기대하던 사람들에게는 김빠지는 답.
그러나 세상이 존재조차 몰랐던 책이 처음 돌아온 순간이기도 했어요.
칼은 빨랐고, 책을 죽였어요.
명주실은 책을 살렸지만, 그 속도로 서고 하나를 다 읽으려면 몇백 년.
19세기는 여기에 수은과 기체와 산을 더했고, 런던의 화학자 험프리 데이비까지 나섰지만 결과는 대개 같았어요.

세 번째 손, 엑스선
2009년 파리, 켄터키 대학의 브렌트 실스가 봉인된 두루마리를 마이크로CT로 찍었어요.
열지 않고 안을 본 첫 순간.
그런데 잉크가 보이지 않았어요.
고대의 잉크는 검댕, 숯이 된 파피루스도 탄소.
밀도로 보는 엑스선에게 둘은 같은 물질.
돌파구는 뜻밖의 곳에서 왔어요.
파데르니의 칼이 남긴 파편들, 표면에 글자가 보이는 조각들이 기계에게 잉크를 가르치는 정답지가 된 것.
실스는 칼에 희생된 두루마리들이 살아남은 두루마리를 여는 열쇠가 된다는 사실을 두고, 역설적이고 또 시적인 일이라고 말했어요.
첫 번째 손의 잔해가 세 번째 손의 열쇠가 된 셈이에요.

네 번째 손, 공개
연구실 하나가 감당할 크기가 아니었어요.
2023년 3월, 깃허브 대표를 지낸 냇 프리드먼과 투자자 대니얼 그로스가 판을 바꿉니다.
가속기에서 찍은 데이터와 도구를 전부 인터넷에 풀고 상금을 건 대회, 베수비오 챌린지.
출범 무렵 상금 총액은 100만 달러 규모, 그해 그랜드 프라이즈에 70만 달러.
그리고 규칙 하나.
「이기려면 방법을 공개하라.」
한 팀의 승리가 곧바로 모두의 출발선이 되는 규칙이었어요.
수천 명이 데이터를 내려받았어요.
2023년 10월 첫 단어 '자주색', 2024년 2월 5일 열다섯 칼럼, 그리고 2026년 6월 25일, 판독 가능성 0점을 받았던 두루마리가 끝에서 끝까지.
270여 년 동안 한 세대에 몇 명이던 손이 수천 개가 된 것.
네 번째 손은 누구 한 사람의 손이 아니었던 거예요.

엇갈리는 기록이라는 한계
이 책은 스스로 선을 긋는 장을 맨 끝에 따로 둬요.
「자료에 관하여」.
- 화면 속 글자의 수 — 2023년 8월 밤 루크 패리터의 화면에 뜬 글자를 한 보도는 셋, 본인 회고의 한 대목은 대여섯으로 전합니다. 책은 셋을 따랐어요.
- 열린 칼럼의 수 — 그랜드 프라이즈로 열린 칼럼은 집계 방식에 따라 열하나에서 열다섯.
- 분화 일자 — 8월 24일은 전승이고, 가을이었다는 반론이 학계에 있습니다.
- 판독의 확정 — 판독은 진행 중인 학문이라 글자 하나가 뒤집히면 번역도 달라질 수 있어요.
이야기는 2026년 6월의 나폴리에서 끝을 맺습니다.
그 뒤의 판독은 이 책 밖에서 앞으로 우리가 이루어가야 할 일.
자칫 승리의 서사로만 읽힐 이야기가, 이 장 덕분에 기록으로 남아요.

이 책이 닿을 독자
- 고대사와 고고학 이야기를 좋아하지만 연대표 나열은 지루했던 분
- AI와 머신러닝이 실제로 무엇을 해냈는지 구체적인 사례 하나로 알고 싶은 분
- 상금 대회와 오픈소스처럼 여럿이 함께 푸는 방식에 관심이 있는 분
그리스 철학 원전 해설이나 파피루스학 교재를 기대한다면 결이 조금 다릅니다.
철학의 내용은 판독된 몇 문장까지만 다루고, 이야기의 중심은 그 문장에 닿기까지의 사람들이에요.
오디오북 『배수비오 챌린지』
제작은 스튜디오 여름
낭독은 스튜디오 여름의 AI 성우 권지완
밀리의서재에서 『배수비오 챌린지』 검색, 또는 퍼블리셔 여름 홈페이지에서 들을 수 있어요.

책의 마지막 질문.
빌라 데 파피리에는 아래로 두 개 층이 손대지 않은 채 남아 있고, 거기 수천 통이 더 잠들어 있을 수 있다는 추산이 오갑니다.
꺼내기만 하면 읽을 수 있게 된 지금, 그 안에서 무엇이 나올까.
아무도 몰라요.
그 열린 문이 궁금하다면, 프롤로그부터.
www.yeoreum.co.kr 에서 『배수비오 챌린지』를 만나보세요.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