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혜안

『포르쉐』 많은 것을 버리고도 하나를 잃지 않은 회사

2025년 영업이익 99퍼센트가 사라진 해에도 911만은 버텼다. 『포르쉐』가 90년 역사에서 꺼낸 세 개념어 — 우아한 배신, 911의 역설, 가문의 중력.

『포르쉐』 많은 것을 버리고도 하나를 잃지 않은 회사

『포르쉐』 많은 것을 버리고도 하나를 잃지 않은 회사

2025년 10월 24일 금요일, 독일 슈투트가르트.
포르쉐가 3분기까지의 성적표를 내놓았습니다.
1년 전 같은 기간 40억 유로를 넘던 영업이익, 4천만 유로.
감소율 99퍼센트.
영업이익률은 14퍼센트대에서 0.2퍼센트로.
자동차 백 대를 팔아도 한 대 값이 남지 않는다는 뜻입니다.

그런데 같은 시기의 판매 통계에 이상한 줄이 하나 있었습니다.
회사 전체가 휘청이는 와중에도 911만은 버티고 있었죠.
60년 넘게 같은 실루엣을 지켜 온, 뒤에 엔진을 단 그 스포츠카.

퍼블리셔 여름이 펴낸 『포르쉐』는 이 기묘한 풍경에서 출발하는 책.
회사는 무너지는데 차 한 대가 버티는 이유를 90년 역사에서 찾습니다.

『포르쉐』 협탁 위 펼친 내지

첫 번째 개념, 우아한 배신

「지키기 위해 버린다. 버렸기 때문에 지켜진다.」

정체성을 지키기 위해 정체성의 일부를 먼저 배신하는 생존의 기술.
포르쉐는 벼랑에 설 때마다 가장 신성하게 여기던 것을 스스로 버렸습니다.

가장 선명한 장면은 1998년 3월의 마지막 주, 주펜하우젠 조립 라인.
반세기 동안 이 회사의 소리였던 공랭식 엔진을 얹은 마지막 911이 굴러 나왔습니다.
후속작 996은 물로 식히는 엔진을 달았고, 원가를 줄이려 절반 값의 박스터와 헤드라이트까지 나눠 썼습니다.
'달걀 프라이'라는 조롱과 절연 선언이 쏟아졌죠.
그리고 996은 역대 911 가운데 가장 잘 팔리는 세대가 되었습니다.

「가장 크게 우는 고객이 가장 많은 고객은 아니라는 것.」

경영진이 분노의 크기와 실제로 떠난 고객의 숫자를 따로 셌다는 대목.
팬덤을 가진 조직이 새겨 둘 만한 차가운 계산입니다.

두 번째 개념, 911의 역설

1963년의 911과 오늘의 911을 나란히 세우면 누구나 한눈에 같은 차로 봅니다.
그런데 두 차 사이에 호환되는 부품은 거의 없습니다.

냉각 방식도, 차체 구조도, 조향과 제동 부품도 여러 번 갈렸습니다.
초기에는 뒤가 무거워 코너에서 꽁무니부터 미끄러지는 차였고, 엔지니어들이 앞 범퍼 안쪽에 무게추를 심어 균형을 맞추던 시절도 있었습니다.
회사는 끝내 엔진을 옮기지 않았습니다.
결함을 없애는 대신, 수십 년에 걸쳐 결함을 길들였습니다.

「911은 가장 변하지 않은 차로 보이기 위해, 가장 집요하게 변해온 차다.」

겉을 지키려고 속을 전부 바꾸는 전략이에요.
약속과 수단을 가르는 기술이 여기서 처음 모습을 드러냅니다.
책의 설명대로, 고객이 사는 것은 부품 목록이 아니라 실루엣을 알아보는 순간의 반가움과 코너에서 차가 보내오는 특유의 핸들링 입니다.

『포르쉐』 펼친 책을 읽는 사람

세 번째 개념, 가문의 중력

1971년, 예순둘의 페리 포르쉐가 가족 회의 식탁에 제안 하나를 올렸습니다.
포르쉐 성을 쓰는 사람도, 피에히 성을 쓰는 사람도 모두 이 회사의 경영에서 손을 떼자.
사촌들이 부서마다 영지를 차리고, 회의가 기술 문제에서 시작해 가문 문제로 끝나던 때였습니다.

누구 하나를 자르면 가문 간 전쟁이 시작될 상황.
그래서 꺼낸 답이 특정인을 겨냥하지 않는 유일한 칼, 가족 전원 퇴장.
1972년 회사는 주식회사가 되었고, 페리 자신부터 회장실을 비웠습니다.

여기까지는 가족 기업의 종언처럼 보입니다.
책의 관찰은 정반대입니다.

「중력은 사라지지 않았다. 보이지 않는 곳으로 옮겨가 더 강해졌다.」

경영에서 물러난 가문은 소유라는 더 높은 궤도로 올라갔을 뿐.
2009년 폭스바겐 인수전에서 회사를 잃은 뒤에도, 두 가문은 지주회사 포르쉐 SE를 쥔 채 폭스바겐그룹의 최상위 주주로 남았어요.
2022년 상장 때는 의결권 있는 보통주의 4분의 1에 한 주를 더한 몫을 다시 사들였고요.

『포르쉐』 전자책 화면을 넘기는 손

영웅담 없는 장

이 책의 두 번째 장 첫머리에서 저자는 미리 밝혀 둡니다.

「미리 말해두는 편이 정직하겠다. 여기에는 영웅담이 없다.」

국민차를 설계하던 창업자 페르디난트 포르쉐는 당원이었고, 친위대의 명예 계급을 받았으며, 권력이 주는 일감과 노동력을 거절하지 않았습니다.
자금을 대고 회사의 절반을 만든 유대계 동업자 아돌프 로젠베르거는 1935년 지분을 헐값에 넘기고 끝내 회사 역사의 각주로 밀려났습니다.
책은 이 대목을 건너뛰지 않습니다.

「천재라는 단어는 면죄부가 되지 못한다.」

성공의 패턴을 말하는 책이 기원의 그늘부터 먼저 펼쳐 둔 셈입니다.

『포르쉐』 램프 아래 앞표지

이 책이 필요한 사람

  • 오래간 지속한 일에서 무엇을 바꿔야 할지 고민하는 분
  • 조직의 방향을 틀어야 하는 자리에서, 반발을 어떻게 해결할지 막막한 분
  • 자기 일의 정체성이 흔들리는 시기를 지나고 있는 분

책의 주제가 포르쉐지만, 엔진 이야기보다 회의실과 가족 식탁의 이야기가 훨씬 많은 책이에요.
아쉬운 점도 분명합니다.

2025년의 추락과 2026년의 새 경영 체제는 아직 끝나지 않은 이야기라, 책의 마지막 부분은 결론 대신 질문을 남깁니다.

오디오북 『포르쉐』

제작은 스튜디오 여름에서 진행되었습니다.

1931년 설계사무소에서 시작해 1972년, 2004년, 2012년, 2026년...

네 개의 부가 책 전체의 연대를 나누어 맡습니다.

밀리의서재에서 『포르쉐』 검색, 또는 퍼블리셔 여름 홈페이지에서 들을 수 있습니다.

『포르쉐』 태블릿으로 펼친 전자책

프롤로그의 한 줄이 이 책 전체의 질문입니다.
어디까지 바꿔도 나는 여전히 나인가.
포르쉐는 그 질문에 90년 동안 몸으로 답해 온 회사.
그 답을 따라가 보고 싶다면, 99퍼센트가 사라진 날부터 시작해보세요.

www.yeoreum.co.kr 에서 『포르쉐』를 만나보세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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